기울지 않은 말
평어를 쓰는 순간에는 나이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같았지만 실은 반대로 나이를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쥐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서로의 나이차를 의식하고 으레 반복하는 말을 피할 수 있었다. 취업 과정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 건 바로 그래서다. 나에게 과도한 능력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상대와 나 사이의 위계질서에 따라 이미 정해진 답을 점점 더 능숙하게 말하도록 훈련하느라 내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갈수록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는 무료
세 사람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가까이서 보고 들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영화들이 대개 무료로 제공되는 것처럼, 그 과목에는 수강료가 없었다. 커리큘럼에도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을 설명하느라 자주 애를 먹었다.
정치학자 김영민은 그게 무엇인지 아는 것만 같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서 그는 삶이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텍스트 정밀 독해를 익히는 과정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구동 방법을 익히는 일과는 다르다. ... 상대적으로 더 훈련된 감수성을 지닌 독해자를 만나 그와 더불어 상당 기간 동안 함께 텍스트를 읽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열고 단련해야 한다. ... 그러다 보면 좀 전에 느꼈던 난감함은 텍스트를 좀 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감수성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이 삶을 독해하는 감수성은 어떤 향기처럼 천천히 우리 몸에 스며들었다. 삶을 측정하는 기술이 없듯, 우리는 당장의 직업 세계에서, 우리를 점수 매기려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다시 예전처럼 무력해졌지만, 점점 그들처럼 재미있게 놀고 탐구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정규과정 1년이 끝날 즈음에는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에서 같은 향이 난다는 사실을, 어느새 서로에게 익숙해진 그들과 우리만 모르고 있었다.
민트 맛 사탕
상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기운이 하나도 없어 작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겠다 싶은 사람은 왼쪽 입구로, 반대로 무슨 일이 있든 없든 누구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게 한다. 물론 직원은 오른쪽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만 인사를 건넨다. 품은 조금 들겠지만 식품이든 마음이든 불필요한 낭비는 줄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민트 맛 사탕도, 상점 직원의 인사도 원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 그 맛이 더 살아날 테니 말이다.
틀린 그림 찾기
친밀함은 반박하기가 꽤 까다로운 개념이다. 친밀함은 사전적으로 지내는 사이가 친하고 가깝다는 뜻이다. 친밀함은 가까움을 내포하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도 있듯이 가까움은 좋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친밀한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이해관계가 발생한다.
이 이해관계가 깊어지면 때때로 덫이 되기도 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안하무인격으로 하는 사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원인을 자신들 사이의 이해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은 이와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남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이 투입되어야 한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끼어든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문제의 당사자들을 서로 떨어뜨려 놓는 일이다.
따라서 차별과 억압 그리고 소통의 단절은 사이가 멀기 때문에, 혹은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위력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근접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부터 가해지는 압박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이해관계에 단단히 묶여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원터치 텐트와 감자탕
라면처럼 혹은 원터치텐트처럼 쉽게 일을 벌이는 수단에 대해 생각한다. 쉽게 먹고 쉽게 쓰는 일에 관해.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일에 관해. 그런 일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을 지운다. 가는 길을 몰라서 오는 길도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뒤늦게 이런저런 규칙을 만들고 학습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빼앗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기 위해. 그럼에도 아직 접지 못한 원터치텐트와 미각을 자극하는 라면이 주위에 널려있다. 지난한 과정을 도려내고 안일하게 갈취한 그 전리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장차 일어날 일의 기미를 얄팍한 달콤함으로 위장한 채.
코로나 19를 통과하는 세 명의 디자이너
안개가 짙게 깔린 도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차선이나 중앙선, 가드레일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워 내 위치를 파악하기가 힘들어진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조급해져 더 이상 라디오나 음악을 들을 수도, 거리의 풍경을 즐길 수도, 옆 사람과 웃고 떠들 수도 없게 된다.
온갖 종류의 정보가 사라진 안갯속은 의지할 데 없이 고요하고 쓸쓸하다. 거꾸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가 길 위에 존재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속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차의 속도를 줄이고 앞차와의 거리를 평소보다 넉넉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안개등을 켜 시야를 넓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모퉁이에서는 경음기를 울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운전자에게 내 위치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창문을 열어 주변 도로 상황이나 다른 운전자가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인생의 은유
요즘 은유에 대해 배우는데, 그중 “인생은 여행이다”라는 은유는 익숙하지만 새롭다. 여행 관련 일을 하면서 요즘 세대의 여행은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효한가 싶어, 같이 일하는 이십 대 초반 디자이너에게 물었더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잘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여행은 즐거운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럼 무슨 은유가 적절하겠냐고 다시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등산”이라고 대답했다. 아, 그들의 인생은 그런 것이구나. 요즘 세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많이 보았지만 이보다 더 와닿지는 않았다.
우리의 재미의 세계
다시 말하자면, 어떤 영수증을 가져다 주었어도 나는 ‘호기심’에 대해 썼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눔’에 대해, 누군가는 ‘성장’에 대해 썼을 것이다. 어쩌면 이는 우리 각자가 영수증을 고를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마트 영수증, 백화점 영수증, 세탁소 영수증, 음식점 영수증, 카페 영수증, 편의점 영수증, 필라테스 영수증 그리고 영어가 빼곡한 영수증까지. 그 다양한 영수증 중에서 나는 왜 이 영수증을 골랐을까? 나는 왜 이 영수증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내가 가지고 온 영수증, 나는 왜 그 영수증을 가지고 왔을까? 그 영수증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